티스토리 뷰

이수인에게 권하는 김상범 회장의 ‘좋은 책’


“시를 잊고 사는 세상 모든 이에게”


저자소개

저자 정재찬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문학교육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시의 이념과 논리》, 《문학교육의 사회학을 위하여》, 《문학교육의 현상과 인식》, 《문학교육개론 1》(공저), 《문학교육원론》(공저) 등이 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수차례 집필하고 미래의 국어교사들을 가르쳐온 그의 수업 방식은 특별하다. 흘러간 유행가와 가곡, 오래된 그림과 사진, 추억의 영화나 광고 등을 넘나들며 마치 한 편의 토크콘서트를 보는 것 같다. 그는 시를 사랑하는 법보다 한 가지 답을 말하는 법을 먼저 배워온 학생들에게 시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돌려주고 싶었다. 매 강의마다 한양대학교 학생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최우수 교양 과목으로 선정된 ‘문화혼융의 시 읽기’ 강의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교수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의술, 법률, 사업, 기술이 모두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란다.” 오늘도 그는 키팅 교수가 되기를 꿈꾸며 시를 읽는다.


대학교의 한 강의실, 학생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눈물짓다가, 탄식하다가, 깔깔깔 웃는다. 그리고 강의의 끝을 알리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이 아니다. 바로 대학의 시 강의에서 벌어진 장면이다. 보통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마치 ‘종교적 제의’와 같은 문학 시간을 거치며 문학에 완전히 흥미를 잃는다. 교사는 마치 제사장처럼 경전을 대하듯이 주석을 덧붙이며 시를 읽고, 학생들은 그 주석을 열심히 받아 적고 암송하면서 시의 낭만과 아름다움과 진실들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간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시가 무어고 소설이 무언지 까맣게 잊고, 먹고 사는데 급급해질 뿐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제대로 시를 읽은 적이 없을 지도 모른다.


한양대학교 국어교육학과의 정재찬 교수는 이러한 우리 문학 교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교양 강좌 ‘문화혼융의 시 읽기’를 개설했다. 이 수업에는 주로 문과 대학생보다는 공대, 의대, 법대, 경영대 등, 시와는 거리를 두고 지내 온 학생들이 대부분. 무엇이든 공식이나 수치로 답하길 즐겨 하는 ‘메마른 심장의 상징’ 공대생들에게 시를 읽히는 과정은 마치 초등학생에게 미적분을 가르치는 것처럼 어려웠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이러한 공대생들마저 눈물짓게 한 정재찬 교수의 시 읽기 명강의를 엮어 낸 책 이다.


사실 이 책에서 다룬 46편의 시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작품들이다. 중·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한 번쯤 보았던 한국의 근·현대시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눈은 살아 있다”의 ‘눈’은 오로지 ‘순수’의 상징이라고 읽고, 김소월의 시는 무조건 식민지 지식인의 정한이라고 해석해 온 그런 시들 말이다. 신경림의 〈갈대〉, 윤동주의 〈별 헤는 밤〉, 김춘수 〈꽃〉 등 교과서에서 클리세(Cliche)처럼 읽히던, 그러나 지금까지도 한국 최고로 손꼽히는 시들을 동시대인의 삶 속에 생생하게 되살리기 위해 강연에는 각종 영화와 소설, 유행가와 가곡, 그림과 사진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이 동원되었다. 소리와 영상뿐 아니라, 후각과 촉각을 모두 동원한 특별한 시 읽기였다.


이 책은 평론의 언어를 그대로 답습하여 문학으로부터 독자를 소외시키고 마는 우리 문학교육의 엄숙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마치 축제를 즐기듯 문학을 향유하는 방법을 일러주고자 한다. 문학작품을 많이 아는 것보다 진짜 좋아하는 시 한 작품이 있어야 스스로 작품을 찾아 읽고 즐길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문학교육이 잘 살아서 문학 역시 더 잘 사는 관계로 만들고 싶었다(인터뷰 중)”는 정재찬 교수는 몇 차례의 강의를 통해 학생들이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활용하여 자신의 일상을 시와 함께 읽고 쓰는 힘을 기를 수 있는 교수법을 실험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학업과 취업 준비에 지쳤던 학생들은 20년 전 혹은 50년 전의 시가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비추는 듯 공감했고, 직접 글을 쓰며 스스로 치유되고 있음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진실로 처음 ‘시’를 만난 것이다. 이처럼 2012년부터 공대생들이 기립박수로 화답한 명강의 ‘문화혼융의 시 읽기’의 생생한 현장을 유려한 문체로 담아낸 이 책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문적 지평을 확장해나간다. 더불어 에세이를 따라가다 보면, ‘공대생’처럼 시를 잊고 살았던 사람들 모두 다시 시의 즐거움을 되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