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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짐하지만 아무나 실천하기 힘든 것, 우리는 그것을 ‘독서’라고 부릅니다. 일상은 바쁘고, 마음의 여유는 없고. 독서가 힘든 이유는 많지만 파란책방은 다른 이유에 주목합니다. ‘혹시 우리가 제대로 된 독법(讀法)을 익히지 못해서가 아닐까’라고 말입니다. 돌아보면 책을 왜,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우리는 교육받은 적이 없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면 눈과 귀가 즐거운 이 디지털 시대에, 종이를 넘기며 텍스트를 읽는 아날로그적 행위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요? 책을 제대로 읽으면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말하는 박웅현 작가<책은 도끼다>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논에서 잡초를 뽑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벼와 한 논에 살게 된 것을 이유로

'잡'이라 부르기 미안하다

-<이쁘기만 한데..> 전문


이것도 참 좋은 한 줄입니다. 잡초라고들 하는데 관점을 벼로 놓았기 때문에 잡雜이 된 겁니다. 풀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분 나쁘겠습니까?


-박웅현, <책은 도끼다> p. 23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논을 봅니다. 그렇다고 논에 있는 잡초를 유심히 ‘관찰’하지 않습니다. 벼와 잡초의 관계를 ‘사유’하지도 않습니다. 일반인이 무심하게 흘린 그 풍경을 시인은 이렇게 달리 봅니다. 같은 사물도 다른 각도로 보는 시인의 시선, 대단하죠? 작가의 친절한 안내를 통해 우리는 깨닫습니다. 간단한 시 한 편에서도 상대성을 기반으로 한 세상의 이치와 역지사지의 미학을 읽어낼 수 있음을요.



#2


저는 책 읽기에 있어 '다독 콤플렉스'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독 콤플렉스를 가지면 쉽게 빨리 읽히는 얇은 책들만 읽게 되니까요. 올 해 몇 권 읽었느냐, 자랑하는 책 읽기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일 년에 다섯 권을 읽어도 거기 줄 친 부분이 몇 페이지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줄 친 부분이라는 것은 말씀드렸던, 제게 '울림'을 준 문장입니다. 그 울림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숫자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보고 잊히는 것과 '몸은 길을 안다' 이 구절 하나 건져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최인훈의 <광장>을 다시 읽는다면 저는 아마도 지금보다 더 많은 부분에 줄을 칠 것 같습니다.


-박웅현, <책은 도끼다> p. 34


1년에 100권 읽기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너도 나도 권수 채우기에 열을 올리며 책 읽는 행위에 심취했던 때였죠. 이에 대한 작가의 일침이 인상적입니다. 책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흡수한 정보와 지혜의 질이 중요함을 말합니다. ‘다독 콤플렉스’를 덜어주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네요. 다만, 사람에 따라 감상의 능력은 다르겠죠? 책 한 권에서도 울림 있는 문장을 많이 건져내는 사람은 평소 독서력이 있는 분일 확률이 높으니까요. 독서 초보자라면 양에 천착하며 독서 습관을 만들고 지적 체력을 다지는 노력도 중요할 것 같아요.



#3


같은 것을 보고 얼마만큼 감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풍요와 빈곤이 나뉩니다. 그러니까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지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은 "문화미와 예술미는 훈련한 만큼 보인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도 처음 피카소의 작품을 볼 때 왜 좋은지 몰랐습니다. 좋다니까 감동을 짜내며 좋은가보다 했죠. 


그런데 지금은 좋은 걸 알겠습니다. 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같은 책들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책들을 읽고 난 다음에 본 피카소의 그림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이젠 앙리 루소의 어떤 그림을 보고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생이 풍요로워지기 시작한 겁니다.


-박웅현, <책은 도끼다> p. 47


<책은 도끼다>의 가장 정수인 구절 같아요. 책을 읽는 목적은 인생의 풍요로움을 위한 것이고, 그 과정을 작가의 구체적인 경험담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어요. 참 다행이에요. 감상 능력이 타고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충분히 연마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요. 충분히 감상하려면, 그에 맞는 사전 준비가 필요한 사실도 유추해 볼 수 있겠죠?



#4


휘슬러가 그린 멋진 안개 그림을 본 오스카 와일드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는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라고요. 책이나 그림, 음악 등의 인문적인 요소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촉수를 만들어줍니다.


-박웅현, <책은 도끼다> p. 75


‘촉수’라는 표현이 신선하게 다가오네요. 촉수가 많다는 것은 자기만의 ‘관심 키워드’가 많다는 말과 동의어 같아요. 누구나 관심사엔 남들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니까요. 다양한 세상사와 이야기를 포괄하는 책은 일상의 지루한 반복 속에 무디어진 촉수를 날카롭게 해주기도, 새로운 촉수를 만들어 주기도 하는 훌륭한 수단이에요. 



#5


'뼈빠지는 수고를 감당하는 나의 삶도 남이 보면 풍경이다.' 이런 인상적인 문장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삶이 그 사람한테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지만 멀리서 보면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죠. 그러고 보니까 모든 근경은 전쟁이고, 모든 원경은 풍경 같습니다.


-박웅현, <책은 도끼다> p. 323


좋은 책은 삶의 전경을 조감할 수 있게 해줘요. 지인들이 말해주지 않는 불편한 진실을 간결한 언어로 전해주죠.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될 수 있는 사실도 책을 통해서라면, 조금 더 일찍, 조금 더 다각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인사이트를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적어도 포장된 남의 삶을 마냥 부러워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파란책방이 뽑은 문장들, 두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독서’에 대한 박웅현 작가의 철학을 들여다본 시간이었어요. 텍스트를 읽는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을 읽고 해석하는 자기만의 ‘촉수’를 키워 나가는 일이겠죠. 삶 자체를 텍스트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에게 사실 책은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아직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우리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책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을 것 같습니다. 책을 맛있게 읽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책은 도끼다>를 일독하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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